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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종이 한 장 차이

종이 한 장(의) 차이
1. 사물의 간격이나 틈이 지극히 작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수량, 정도의 차가 지극히 적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은 아주 미세한 차이로 인해 결과가 크게 뒤바뀐 경우 종종 사용되곤 한다.

(얼마 전 시작된 카타르 월드컵의 중계진들도 아쉬운 슈팅 또는, 패스를 보며 위 문장을 언급할 수도 있다.)

 

 

블로그 첫 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작성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 글이 "종이 한 장 차이"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을 작성하기 전 최근 깨달은 것에 대해 먼저 말을 하고 싶다.

 

 

어느덧 30대 중반 진입을 앞두고 있는 본인에게 갑작스러운 '얼태기'가 찾아왔었다. 자주 즐겨 오던 축구나 풋살조차 함께 하던 친구들 및 개인의 사정으로 기회가 줄어들면서, 체력마저 쇠약해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었다.

'얼태기'란 평소보다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고, 더 못났다고 생각하는 시기를 말하는 은어 (얼굴+권태기=얼태기)

 

 

그러던 중 우연히 보게 된 "매일 팔굽혀펴기 100회의 결과"라는 유투브 콘텐츠는 건강과 외모 관리에 소홀했던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의지를 불태우는 동기가 되었다.

 

 

"팔굽혀펴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개시되었고,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운동일지 양식'을 만들어 종이 한 장으로 인쇄한 것이다.

 

 

매일매일 팔굽혀펴기를 한 날짜를 기록하고, 그날 수행한 세트 수와 세트당 개수를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고된 업무나 술자리를 가져서 힘든 날이더라도 거실에 붙여둔 종이가 눈에 밟혀서 어떻게든 팔굽혀펴기를 했다. 

 

 

그 결과 처음 10개 2세트로 시작했던 팔굽혀펴기는 하루 최대 90개까지로 늘어났다. 그리고 종이 한 장에 하루의 팔굽혀펴기 기록을 채워가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겨났다.

 

 

심지어 꾸준한 축구로 발달된 하체에 비해 약했던 상체도 굵어지는 것이 체감되었고(물론 수많은 남자들은 운동 후 뽕에 차오른다.)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께서 팔뚝을 만지시고 "왜 이리 단단해졌어"라고 한 결과까지 일궈냈다.

 

 

하지만, 저 도전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무너졌다.

 

 

인쇄했던 종이 한 장의 양식을 모두 채운 이후 새로운 운동일지 양식을 인쇄하지 않았다. 그렇게 팔굽혀펴기를 수행하는 빈도는 점차 줄어들었고, 왠지 모를 미안함에 떠밀려 최근 한 달 간은 샤워 전 간헐적으로 50개가량 수행한 것이 전부였다. 

 

 

실제로 좋은 결과를 일궈내면서 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던 프로젝트는 '종이 한 장'의 부재로 무너졌다. 프린트가 불가능한 환경이 아니다. 회사에서 인쇄할 수 있고 집 앞에서 무인 인쇄점에서 50원으로 인쇄할 수 있었다. 심지어 카드 결제도 가능한데 말이다.

 

 

나만의 프로젝트를 잃고 방황하던 중, 대략 15년도쯤에 인연이 되어 페이스북 친구로 있던 Steven이라는 분의 페이스북 글 하나를 보게 되었다. 바로 "오마카세, 글쓰기 그룹"

참가비 10만 원의 이 프로젝트의 그룹원은 약속한 10주 기간 동안 매주 1회(총 10회)의 글 작성을 완주해야 한다. 완주 시 해당 금액은 오마카세 밋업 시 사용되며, 주 1회의 글 작성을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가 존재한다. (현재는 1기 모집이 마감되었으며 절대 수익성 활동이 아니다.)

 

 

평소 페이스북을 잘 키지 않던 내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그 페이스북 글을 보았으며, 조금의 용기를 내어 뒤늦게 글쓰기 그룹에 합류했다. 이미 1기 모집 활동이 시작된 터라 합류가 어려웠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마지막에서 2번째 멤버(즉, 종이 2장 차이?)로 합류했다.

 

 

이것이 내가 첫 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쓰게 된 배경이다.

 

 

"종이 한 장"에 담길 정도 분량의 이 글은 그룹 합류 후 귀가하자마자 바로 작성하였다. 분명 이 글은 훗날 내가 쓰게 될 책 한 권(또는, 인생의 한 챕터)의 인트로 한 장 분량을 차지할 것이다.

 

이제 멀티버스 세계엔 이 글을 작성한 현생의 나와, 쓰지 않았을 내가 공존한다. 분명 이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다른 삶의 경로와 종착지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서로를 가리키며 놀라고 있는 멀티버스의 스파이더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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