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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그 때 놀아주셔서 감사했어요

2023년 설 연휴, 부모님의 첫 해외여행을 함께 보내고 왔다. (해외라고 부르기엔 꽤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

 

 

부모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적이 없었다. 그에 반해, 나는 대학생이 된 이후 일본, 유럽, 동남아시아 등 다양한 국가를 여행했다. 여행이 주는 기쁨은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도 각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낯선 거리에서 느껴지는 설렘과 해방감, 타지에서 만나는 인연들과의 교감, 두려우면서 발길은 멈추지 않는 도전 의식 등

 

 

이처럼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부모님께 선물하고 싶었다. 본인과 부모님의 일정 상 '2023 설 연휴'가 유일한 여행 가능 일정이라 적극적인 추진과 후원(?)으로 3박 4일의 여행을 성사시켰다.

 

 

본 글은 여행지에 대한 내용 대신 부모님과 함께 한 첫 효도 여행에서 느낀 소회를 적으려고 한다.

 

  

(흔한 레퍼토리 같지만) 본인의 유년~청소년 시절은 유복했던 시기도, 어려웠던 시기도 있었다.

어떤 시기든 부모님은 본인과 여동생 남매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고, 우리 남매를 위한 여행만을 다녀오셨다.

부모님의 여행은 두 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꿈꾸는 것보다, 우리 남매가 여행지를 추억하며 좋은 꿈을 꾸며 잘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서 있었다.

 

 

※ 첫 해외 여행객인 '부모님, 여동생, 조카'까지 총 4명을 이끌고 다녀왔다....

 

 

 

첫째, 소년 소녀 마음

 

우리 가족은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다소 서툴고 쑥스러워한다. 그럼에도 공권 예매 이후 부모님의 들뜬 기분은 아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항공권 캡처 이미지로 바뀌어 있었고, 식탐이 적은 어머니는 일본에서 꼭 먹고 싶은 메뉴들을 줄줄이 내게 얘기해 주셨다. (초밥, 튀김, 라면 등을 한국에선 즐겨 드시지 않았음에도..)

 

출국 전날 바뀐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환전한 여행 경비를 뽐내셨다.)

 

 

출국 당일 처음 인천국제공항 터미널에 도착한 부모님의 설렘은 6살짜리 조카아이의 설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른으로서 표현의 절제는 있었지만 발걸음과 목소리, 공항패션 만으로 느껴졌다.

 

 

일본에 도착한 이후 한국과 낯선 도로 상황,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방향, 특이한 식당 분위기나 식재료, 젊은이들의 스타일 등 굉장히 많은 부분에 흥미로워하셨다. "이것 봐, 저것 봐"

 

 

마치 어린 유년 시절, 낯선 동네와 거리를 친구와 헤맬 때 느낄 수 있던 긴장감과 해방감이었을까? 중년의 삶을 지나고 있는 부모님께도 여전히 낯선 경험은 즐거운 일이었던 것이다.

 

 

많은 부모님이 어린 자녀들을 놀이공원, 테마파크, 관광명소로 데려간다. 몸과 마음이 지쳐도 낯선 환경에서 감각을 깨우고, 식견을 넓히고,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이유로

자녀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에게도 낯선 행복은 존재한다.   

 

 

 

둘째, 동상이몽 동반여행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꾼다." 개성이 다르고, 원하는 바가 다르다."라는 의미로 썼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가 아닌)

 

 

부모님 두 분이 여행을 즐기는 타입은 차이가 컸다.

 

 

어머니는 새로운 장소, 음식, 사람, 언어에 높은 관심을 보이시며 간단히 배운 일본어로 식사를 주문하거나 인사를 건네는 것에 적극적이셨다. ('파파고' 어플이 큰 몫했다!) 호기심과 도전 정신, 새로운 경험에서 얻는 즐거움이 컸기에 내가 준비한 일정 모두에서 새로움을 찾으셨다.

 

반면 아버지는 '평온함'을 선호했다. 아늑한 숙소(=온천)에서 오랜 시간 머물기 원하셨고, 정갈한 분위기의 숙소와 음식에서 느끼는 기쁨의 폭이 상당히 높으셨다. 반면 일부 식당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이나 잦은 이동에 피로를 느끼셨고.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음식에서 느끼시는 절망(?)의 폭이 큰 편이었다.

특히, 출발 전부터 기대하셨던 '자루소바'가 아버지의 입맛을 충족시키지 못해 굉장히 시무룩해하셨다.

 

 

 

 

두 분의 성향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각각의 니즈를 충족시켜 드리긴 어려웠다. 첫 해외여행이라는 부담감은 많은 것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으로, 그것은 다소 부지런한 스케줄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두 분의 여행 스타일을 화끈하게 맞춰주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차라리 오늘은 아버지를 위한 날, 내일은 어머니를 위한 날이라고 칭하며 대단한 하루를 선사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즉, 자녀로서 부담감을 갖기 이전에 두 분이 생각하는 여행의 본질에 더 주목할걸 그랬다.

 

 

 

마지막 셋째, "그때 놀아주셔서 감사했어요."

 

 

 

 

귀국 다음 날, 어머니께 위와 같은 카카오톡을 받고 마음이 굉장히 뭉클했다. (아버지는 통화로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왠지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데려간 서울랜드, 썰매장, 겨울 산장 등에 다녀온 후, 나 또한 부모님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변했을 것 같다.

심지어 나도 6살 조카한테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운 게 뭐였어?"라고 물어봤다.

 

 

현실적으로 패키지 관광상품이 아닌 이상, 동반 효도 여행은 나름 높은 노고와 비용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여유가 많지 않은 현대인의 과감한 결정과 추진엔 분명 어려움이 있다.

 

근데 평생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었다고 하셨다. 즉, 내가 거쳐온 과정은 이미 노고가 아니다.

 

 

오히려 서툴었던 아들내미의 첫 동반 해외여행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 갚아도 갚아도 갚을 수 없다는 부모님 은혜에 조금이나마 감사를 표현한 것 같다. 예로, "어린 저와 함께 안면도에서 조개를 캐며 놀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를 드디어 전한 것처럼

 


 

부모님과의 여행은 쉽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여행은 수많은 변수를 동반하기도 하고, 내가 아닌 타인과의 여행은 분명 쉽지 않은 시도이다. 

여행 때문에 많은 커플들이 갈라서거나 친구들끼리 다투고 하지 않는가. 

 

 

한번 다녀온 내겐 더 먼 여행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와 확신이 생겼다. (=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당신도 아직 부모님과의 여행을 이런저런 사유로 미루고 있었거나 생각하지 못했다면, 한 번쯤 제안해 보길 바란다.

"저 어릴 때 먼 곳까지 가서 놀아주셔서 감사해요. 저랑도 먼 곳 놀러 가보아요."

 

티웨이 광고로도 손색 없는 어머니가 직접 기내에서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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